쉽게 읽는 레코드의 역사
1. 1877년, 미국의 토머스 에디슨이 왁스 혼합물로 만든 원통형의 실린더 레코드를 발명하여 인류 역사상 최초로 소리를 재생하는 데 성공했다. 이 레코드는 2분 정도를 녹음할 수 있었고, 수십 번 재생하고 나면 닳아 없어졌다.
2. 1887년, 독일의 에밀 베를리너가 셸락으로 만든 원반형의 S.P.(Standard Play) 레코드를 개발했다. 처음에는 5인치로 개발되었다가 이후 7인치로 개량되어 2분 30초 정도를 녹음할 수 있었다. (78 rpm)
3. 1896년 7월 24일, 미국의 인류학자 앨리스 플래처가 조선인 안정식, 이희철, 양손을 워싱턴 D.C.의 자기 집으로 초청하여 조선의 민요와 동요 등을 부르게 한 뒤 이를 실린더 레코드에 녹음했다. 우리 민족 최초의 음원으로 알려져 있다.
4. 1903년, 3분 20초 정도 녹음이 가능한 10인치 SP와 4분 30초 정도 녹음이 가능한 12인치 SP가 개발되었다. 이는 대중음악의 형성기에 한 곡이 3~4분 정도의 러닝타임으로 구성되도록 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5. 1904년, 독일의 오데온레코드에서 양면을 모두 활용할 수 있는 SP를 개발하여 러닝타임이 두 배로 늘어났다.
5.1. SP는 실린더 레코드에 비해 부피가 작고 내구성이 강하며 대량 복제가 쉬워 실용화에 성공하며 세계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5.2. SP는 한 장에 두 곡 이상 수록할 수 없었으므로 여러 곡을 동시에 발표할 때는 여러 장의 SP를 세트로 제작했는데, 사진첩과 유사한 패키지에 음반들이 꽂혀있었다. 그리하여 이때부터 이러한 음악 모음집을 ‘앨범’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6. 1907년 3월, 컬럼비아레코드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음반을 출시했다. 대한제국의 관기 최홍매와 악공 한인오, 그리고 세 명의 기악 연주자가 오사카에서 민요와 잡가 등을 녹음했고, 원반을 미국으로 가져가 SP를 생산한 뒤 이를 다시 대한제국에서 수입하여 국내에 발매되었다.
7. 1925년, 마이크를 이용해 녹음하고 스피커로 재생하는 기술이 개발되어 축음기가 전축으로 변모했다.
8. 1942년,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싱글인 빙 크로스비의 「White Christmas」가 발표되었다.
9. 1945년, 역사상 가장 성공한 SP 앨범으로 기록된 빙 크로스비의 『Merry Christmas』가 발표되었다.
10. 1948년, 컬럼비아레코드에서 폴리염화비닐로 만든 L.P.(Long Play) 레코드를 개발했다. (10인치, 12인치; 33 1/3 rpm)
10.1. LP는 SP에 비해 가볍고 잘 깨지지 않고 마모에 강했으며, 음질도 월등히 향상되었고, 분당 회전수를 줄여 한 면당 수록 가능 시간을 22분 30초까지 획기적으로 늘렸다. 이후 기술이 발전하면서 30분 이상으로 계속 늘어났다.
10.2. 기존에 SP 모음집을 의미하던 ‘앨범’은 이제 한 장의 LP를 지칭하게 되었다.
11. 1948년, 프랭크 시나트라의 첫 SP 앨범 『The Voice of Frank Sinatra』(1946)가 최초의 10인치 LP로 재발매되었다.
12. 1948년, 브루노 발터가 지휘하고 뉴욕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나탄 밀스타인이 연주한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마단조 (Op. 64)』가 최초의 12인치 LP로 발매되었다.
13. 1949년, RCA레코드에서 LP와 유사한 형태의 E.P.(Extended Play) 레코드를 개발했다. 중앙의 구멍이 넓어 흔히 ‘도넛판’이라고 불린다. (7인치, 12인치; 45 rpm)
13.1. 경쟁사인 컬럼비아에 맞서 새로운 규격을 제시한 것으로, 컬럼비아가 SP와 크기가 같으면서도 더 많은 시간을 수록할 수 있는 LP를 개발한 반면, RCA는 SP와 러닝타임이 비슷하면서도 크기가 더 작은 7인치의 음반을 개발한 것이었다.
13.2. 이후 한 면당 12분 정도를 수록할 수 있는 12인치 EP가 등장했다. 7인치 EP에 수록하기에는 너무 많고 LP에 수록하기에는 모자라는 양의 곡들이 이 규격으로 발매되었다.
13.3. EP는 표준 경쟁에서 LP에 밀렸지만, 가격이 LP의 1/10 정도에 불과했으므로 사라지지 않고 싱글 시장에서 계속 발매되며 SP를 대체했다. DJ들의 입장에서는 히트곡 위주로 음반을 보유할 필요가 있었고 또 LP보다 소리 골이 넓어서 원하는 곡을 정확하게 재생하기가 더 쉬웠으므로 EP가 선호되었다. 주크박스에서도 EP가 사용되었다.
14. 이렇게 하여 ‘싱글’(7인치 EP), ‘맥시싱글’(12인치 EP), ‘앨범’(LP)의 개념이 완성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다만 지금은 매체와 무관하게 ‘싱글’은 1~4곡이 수록된 작품을 지칭하고, ‘앨범’은 대체로 8곡 이상이 수록된 작품을 지칭하며, ‘맥시싱글’은 ‘미니 앨범’ 또는 ‘EP’라고도 불리며 대체로 4~7곡 정도가 수록된 작품을 지칭한다.
15. 1955년 4월, 프랭크 시나트라가 아홉 번째 앨범 『In the Wee Small Hours』를 발표했다. 이 앨범은 네 장의 7인치 EP, 두 장의 10인치 LP, 한 장의 12인치 LP의 세 가지 규격으로 발매되었다. 대중음악 역사상 최초의 12인치 LP였고, 최초의 콘셉트 앨범(일정한 주제나 분위기에 맞춰 모든 수록곡을 통합적으로 계획한 앨범)이기도 했다. ‘히트곡 모음집’ 이상의 가치를 지니는 ‘아티스트의 음악적 선언’으로서의 깊이 있는 앨범 예술은 이 작품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팝에 대해 이야기할 때 대부분 1950년대 중반을 그 기점으로 삼는 것은 현대 대중음악의 본류인 로큰롤이 1954년에 탄생했고 지금의 ‘앨범’ 개념이 1955년에 비로소 정립되었기 때문이다.
16. 1958년 7월, 대한민국 최초의 LP 『KBS 레코드』가 발표되었다. 우리나라는 싱글 단위로 음반을 구입하고 음악을 감상하는 문화가 정착되지 못한 상태에서 EP와 LP가 동시에 유입되어 보다 효율적이라고 여겨진 LP만 살아남고 EP는 곧 사라졌다. 즉, 싱글 시장이 형성되지 못했다.
17. 1960년, 미국에서 LP가 EP의 판매량을 넘어섰다. 이후 본격적인 앨범 예술의 시대가 열리면서 싱글을 모아 앨범을 발표하는 방식보다는 앨범을 홍보하기 위해 싱글을 발표하는 방식이 점차 일반화되었다.
18. 1963년, 이 무렵 전 세계적으로 SP 제작이 중단되었다.
19. 1967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앨범으로 평가받는 비틀즈의 여덟 번째 앨범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를 비롯하여 무수히 많은 팝의 명반들이 발표되었다.
20. 1981년, 필립스와 소니가 CD의 개발을 완료했다. (8cm, 12cm)
21. 1982년, CD가 상용화되었다. 방송을 통해 대중에게 처음으로 선보인 CD는 비 지스의 『Living Eyes』(1981)였고(1983년 초 발매), 상업적으로 발매된 최초의 CD는 빌리 조엘의 『52nd Street』(1978)였으며(1982년 10월 발매), 디지털로 녹음·믹스된 최초의 CD는 아바의 『The Visitors』(1981)였다(1982년 11월 발매). 새롭게 등장한 이 디지털 매체는 기존의 싱글·맥시싱글·앨범의 형식을 하나의 규격으로 모두 흡수했다.
22. 1982년,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인 마이클 잭슨의 여섯 번째 앨범 『Thriller』가 발표되었다.
23. 1987년, 비틀즈의 모든 정규 앨범이 CD로 제작되면서 CD 시장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24. 1988년, 미국에서 CD가 LP의 판매량을 넘어섰다.
25. 1995년, 대한민국에서 LP 생산이 공식적으로 중단되었다. 이후에는 특별한 경우에만 한정 제작되었다. 그러나 국내외적으로 LP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고, 근래에는 판매량이 다시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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